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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기록/생각주머니

70.

by brabbit.93 배토끼 202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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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언젠가 내 나이 70이 되면 그만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삶에 대한 미련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했다. 내가 죽으면 그저 나무 한그루를 심어주었으면.

고요하고 싱그러운 어느 푸르른 곳에서 나른한 바람을 맞으며,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를 듣고 햇살을 가득 품는 한그루의 나무가 된다면.

평화롭고 따뜻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면 그 얼마나 편안할까?

 

 

 

 

 

고등학생이 될 즈음 생각했던 것 같다. 너무 길게 살고 싶지 않아, 하고. 이 글을 본격적으로 구체화시켜 작성했던 스물다섯에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70에서 수명이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70도 사실 그다지 나쁘지 않다.

 

난 정말 진심인데 그 당시 가족들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나이도 어린 게 벌써 죽는 얘기를 하느냐고 타박을 했더랬다.

나는 딱히 죽는 얘기라기보다 그저 내 생의 마감이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을 뿐인데.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을 보면서 문득 내 인생이 끝난 뒤의 크레딧은 어떤 것들이 채워져 있을까 하고 상상하다 도착한 결말이었다.

 

삶이란 참 묘하다.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한껏 욕심부리고 있었다.

조금 더 예쁜 옷을 입어보고 싶고, 좋은 음악을 듣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고, 좋은 물건을 쓰고 싶다고.

참 많은 상상을 한다. 상상 속에서 나는 내가 동경하는 모습에 나를 대입시켜보기도 하고, 바라는 관계의 연애도 해본다.

나는 소소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바라는 게 많았다.

 

가끔 참 삶이 무료하다고 느낀다.

흘러가는 데로 살아지는 것이 싫고 아까운데 자꾸만 그렇게 떠밀려 살아간다. 인생 뭐 있나 하고.

내 삶에서 나의 결정과 가치관이 중요한 건데 나는 너무 나약해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내 생각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머릿속 한 곳으로 밀어둔 채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

 

 

사실 이 글은 스물다섯에 썼고 지금은 3년이 지나 스물여덟이 되었다.

제법 내 생각을 내밀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른 책임에 순간순간 불안해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단짝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소용돌이치고, 늘 이 순간이 어리게만 느껴진다.

지금도 변함없이 내 생의 마감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싶다. 평화로운 장소에 심어진 나무.

70은 뒤죽박죽인 글이지만 주기적으로 한 번씩 생각나 찾게 되는 일기다. 그것도 내가 꽤 좋아하는.

한 일주일 뒤에 또 보러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이 글에 뭐가 추가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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