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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기록/책 일기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에세이를 읽으며

by brabbit.93 배토끼 2025.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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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민박 사장님께 빌린 책!

양다솔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출판-놀

책의 3/2 정도를 읽은 시점.
1단락 수렵채집인의 후예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계획 없이 퇴사 후 일상을 보내는 구간이 꽤 흥미로웠다. 특히 차를 내려 마시는 부분이 마음에 남았는데, 일어나자마자 물을 끓이는 것이 오랜 습관이며 첫번째로 우려낸 차는 마시지 않되 찻잔과 집기를 따뜻하게 데운 뒤 고양이들이 핥아마시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점. 두번째 우려낸 차부터 마시고 빈속을 뜨끈한 차로 데운다는 점이 나를 이루는 요소로서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게 좋았다. 본인만의 하루를 여는 루틴. 내 삶에도 하루를 여는 어떤 루틴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반짝이게하는 요소들. 나를 이루는것들. 그런것들을 하나씩 모아보자.


‘나에게 여름이란 봉숭아 물을 들인 손끝이다. 손톱이 자라나서 빨간 봉숭아 물이 위로 위로 올라가 결국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꼭 천천히 해가 지는 것 같았다.’
‘손톱 가득 빨간 석양이 타올랐다. 여름이 한창이었다.’
-19p-

인상깊었던 표현들.
봉숭아 물을 들인 손톱을 지는 해, 석양이 타오른다고 표현한 부분에서 탄성이 나왔다. 바라보는 시각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냉동고에 꽝꽝 얼려둔 두유를 절구로 매우 쳐서 잘게 부쉈다. 거기에 팥 두둑이 덜고 시럽 조금과 콩가루를 아낌없이 부었다. 팥빙수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여름의 별미다. 두유로 만들어도 매우 맛있는데 아무도 그렇게 만들어 팔지 않아 직접 해 먹어야 한다. 얼얼하고 달큰하고 고소한 빙수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그릇 위로 숟가락이 정신없이 오갔다.
참 내. 벌써 몇 달째야.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여전히 뭘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안 나네. 나는 생각했지만, 당장 앞에서 팥빙수가 녹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팥빙수. 함께 나눠 먹는 팥빙수. 절벽에서 보이는 풍경은 오늘도 아름답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정말 이상하게도, 전혀 가난해지지 않는다.’
-20p-

재밌게 읽어서 한번 더 읽고 싶었던 구간. 이 부분을 읽고 이 책을 빌려 읽을것이 아니라 소장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냥, 이 부분이 그냥 재미있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든다. 두유를 즐겨마시는편은 아닌데, 그렇게 맛있나? 한번 해먹어봐? 같은 생각도 든다. 여름마다 팥빙수를 찾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릇 위로 숟가락이 정신없이 오갔다는 문장도 웃겼다. 맛있는걸 먹을때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써놓은 것 같아서 책을 읽으며 흐흐 웃었다.
읽다보니 딱 이 부분이 책갈피로 사용할 수 있게 접힌 책의 옆 부분에 짤막히 적혀있다. 오. 이 책의 핵심이었나. 또 하나의 재밌는 포인트가 되었다.


‘어쩌면 그런 순간만이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 몰랐다. 아무리 말해도 닳지 않는 순간, 말할 때마다 빛을 발하는 순간 말이다.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순간 말이다.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기억 말이다.’
-95p-

이 부분은 ‘모녀전철’ 부분 끝 문단에 있는 구간으로 딸이 아빠 이야기를 하는 엄마를 보며 하는 생각이다.

이 문장을 보고 좋았던 기억을 꺼내어보며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삶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정말로 반짝이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 그 기억의 조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지금 떠올려도 빛나서 마음이 환해지는 그런 장면들. 또, 그 시절의 내가 반짝여서, 그때의 마음이 예뻐서 소중해지는 순간들.




엄마와 한 달 살기(1) 수영장에 가는 방법
‘모든 계획과 예측이 보란 듯이 어긋나고 있었다. 생각을 거듭했다. 빈틈은 어디일까, 어떤 점을 간과했던 걸까.
그 순간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내 친구 ‘서’였다. 그녀의 주변에는 늘 아이와 노인이 있었다. 그녀는 그 상황을 아주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생략)
너는 그들과 지낼 때 하루의 계획을 어떻게 세우니? 그러자 서는 말했다. 계획? 다솔아, 그런 거 세우면 안돼. 아무것도 세우면 안돼. 모든 걸 버려. 리듬에 너를 맡겨.
-161p-

엄마와 한 달 살기(2) 엄마의 진심
‘끝없이 멀어진 의도와 말 사이의 거리 때문에 우리는 만나면 네 시간에 한 번씩 싸우는 경이로운 패턴을 갖게 되었다. 말의 의도가 얼마나 중요하지 않은지, 말이란 얼마나 어려운 도구인지 매번 실감하게 된다. 그녀에게서 멀어진 후에야 세상에 칭찬 같은 게 있었음을 알았다.‘
‘그런 엄마와 한 달을 보내며 알게 된 진실이 있다. 중년 아주머니들의 가장 큰 행복은 단연 ’자식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매일같이 수영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말을 걸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대사는 정해진 것처럼 똑같았다. “딸이랑 같이 오신 거예요?” 그렇다고 하면 부러움이 섞인 말들이 이어졌다.’
‘그러면 우리 엄마는 놀라운 말을 했다. 이를테면 이런 말이다. “그러게요. 제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나 봐요.”’
-168p-

‘우리는 물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삶에 이런 날이 오다니. 우리가 골드 회원이라니. 돈 많은 사람의 삶이 이런 걸까. 그런데 이 시간이 비로소 몸이 다 망가져야만 오다니. 그것도 겨우 한 달만 오다니. 그래도 오다니.’
-169p-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물론 성격은 다르지만.
읽으면서 푸하하 웃기도하고 놀라기도하고 딸과 엄마의 관계를 보며 공감했다. 나도 사실 엄마랑 성격적으로 잘 맞는편은 아니걸랑. 어쨌든 모녀관계도 역시 노력을 해야한다.
우리 엄마는 했던말을 또 하고 또 하기 때문에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다 들어줄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엄마와 충돌하는 순간의 내 감정을 잘 흘려보낸뒤 차분하게 반응하는것도.
한편으론 뭉클한 마음도 고개를 드는게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실 수가 없다. 좀 극성맞긴해도, 그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애틋해진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우리 엄마 역시 자식들과 보내는 시간을 정말 정말 좋아하시니까. 그래서 엄마를 데리고 좋은 카페, 식당 또는 국내여행, 더 나아가 제주도도 오고싶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이럴땐 면허가 없는게 아쉬워진다. 하지만 여행을 같이 가게되면 현실적으로 나를 아예 내려놔야겠지?.. 그래도 한번쯤은 가보고싶다.


‘매일같이 차를 마시는 사람으로서 나는 종종 물에 대해 생각한다. 물도 살아 있는 것이라, 처음부터 센 불로 팔팔 끓인 물과 약한 불로 천천히 달군 물은 기운이 다르다. 전자는 어딘가 급하고 화가 나 있고, 후자는 은근하고 부드러우며 상냥하다. 진지하게 차를 다루는 사람들은 그래서 물을 함부로 끓이지 않는다. 끓는물에 찬물을 섞어서 온도를 조절하는 일 따위도 하지 않는다. 두 물의 기운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170p-

이 부분은 새로워서 신기하고 재밌었던 부분. 이런 기준을 가지고 차를 마시는구나.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말했다. ’‘나는 삶에서 가장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있거든“
종일 수영장, 목욕탕, 한의원을 모시고 다녀와 진이 빠지고 배를 곯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왜 굳이 청소를 하지 않고 사느냐고 물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며칠안에 집 안을 너저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뱀처럼 옷들이 벗은 곳에 그대로 널려 있었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 찾아야 했고, 늘 필요한 것을 두고 나왔다. 쾌적한 공간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공식과도 같은데 왜 굳이 집 안을 난장판으로 해놓는지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다. 나름대로 이해해보고 싶어서 했던 질문인데 엄마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무시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173,174p-

엄마와 한달살기 부분인데 여기서는 남편이 떠올랐다. 매일 물건이 어디있는지 한참 찾는 모습이나 옷가지가 허물처럼 널려있는 것이 닮았다.

쾌적한 공간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공식과도 같다는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일까 늘 궁금했고, 이해하고 싶었지만 어려웠다. 처음에는 더 잘하는 사람이 하면되지!하고 다 정리하려했는데 한계가 있었다. 어떤 지점에서 완전히 지쳐버렸고 어느정도 포기하게됐다.
그런데 자신의 삶의 방식을 무시한다고 느낄 수 있구나. 너무 놀랬다. 배려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을까?


겨울이 없는 집
‘분무기로 물을 뿌린 뒤 잘라놓은 뽁뽁이를 붙였다. 5미터는 턱없이 부족했고 창문들은 겨울밤처럼 길었다. 얼마 뒤 창문 틈을 막을 문풍지와 뽁뽁이를 더 샀다. 바람은 여전히 집으로 들어왔다.’
-178p-

겨울밤처럼 길었다는 표현이 와닿는다. 해가 긴 여름과 해가 짧은 겨울. 더 설명 하지 않아도 얼마나 시리고 길었을지 극명하게 와닿는다.


최초의 만찬
‘한 친구가 벌떡 일어나서는 책을 한 권씩 나눠주는 것이었다. “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책이야” 아무리 좋아하는 책이라도 그렇지, 다섯 권이나 사서 돌리다니 미친걸까, 생각하며 보는데 제목은 이랬다. [아무튼,비건]. 마치 그날 만남의 제목 같았다.’
-212p-

‘책을 건네는 친구의 눈은 사뭇 결연했다. 이전과 거의 같으면서도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달라 보였다. 어딘가 흐릿했던 눈가 한구석이 매우 또렷해진 것 같았다. 새로운 힘이 흐르고 있었다. 올 것이 왔군. 나는 생각했다. 언제나 여기 있을 것만 같던 친구가 저기로 훌쩍 가 있는 것 같았다.’
-213p-

본인만의 가치관이 확실하게 바로 섰을 때 선명해지는걸까. 눈가 한구석이 매우 또렷해진 것 같았다는 문장이 마음에 들어왔다.


‘세상에는 콩이 미친 듯이 많았다. 강낭콩, 검정콩, 흰콩, 밤콩, 작두콩, 렌즈콩, 병아리콩, 라마빈... 콩이란 단순히 콩자반이나 밥에 넣는 재료가 아니었다.
그 외 다른 콩의 모습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콩은 주스가 되고, 죽이 되고, 커리가 되고, 페이스트가 되고, 우유도 되고... (생략) 그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콩을 발효해 만든 ’템페‘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발효 음식인데, 콩의 껍질을 벗겨 균과 함께 발효한 것으로 언뜻 보기에는 치즈 같기도 하고 메주 같기도 하다. 단, 특유의 냄새나 끈적임이 없다. 이 친구의 가장 큰 장점은 ’식감‘이다. 특별한 맛이 나지 않고, 채식 음식에서 찾아보기 힘든 쫄깃한 식감을 갖고 있어서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맛을 낼 수 있다.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함은 물론이다.
나는 템페를 깍뚝 썰어 튀김옷을 묻힌 뒤 높은 온도의 기름에서 바삭하게 튀겨냈다.
그러고는 알싸한 다진 마늘과 잘 익은 고추장, 달큰한 조청과 매실액을 넣어 만든 강정 소스를 버무려 센 불에 살짝 볶았다. 그 위에 볶은 참깨까지 솔솔 뿌려주면, 맛깔나는 빨간소스에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템페강정이 완성된다. 새콤하고 달콤하고 쫄깃하면서도 바삭한 것이 줄 서서 사 먹던 닭강정 부럽지 않다.

템페강정과 훌륭한 궁합을 자랑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후무스 페스토 샌드위치다.
신선한 바질 잎을 갈아 만든 바질 페스토를 갓 구운 치아바타의 한쪽에 듬뿍 바른다. 병아리콩을 삶아 으깨서 만든 후무스를 다른 한쪽에 발라준다. 가지와 새송이버섯, 애호박을 노릇하게 구워 그 위에 올려준다. 거기에 잘 익은 토마토와 아보카도, 싱싱한 상추와 적양파까지 곁들여주면 가지각색의 색재료들이 눈을 즐겁게하는 푸짐한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입을 크게 벌려 한입 베어 물면 상큼한 바질 향과 고소한 후무스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가지, 새송이, 애호박의 쫀득한 식감과 토마토와 야채의 신선함이 그야말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생략) 배부르게 먹은 뒤에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나른하거나 몸이 무거운 일도 없다.’
-215,216,217p-

맛있겠다. 비건은 아니지만 채소를 좋아해서 비건메뉴들이 맛있어 보인다. 특히 후무스 페스토 샌드위치는 만들어서 먹어보고싶다. 가지, 새송이버섯, 애호박 전부 구우면 달고 고소한 맛이 배가 되는데. 부드러운 후무스와 오독오독 씹히는 아보카도, 풍미를 더해주는 토마토와 씹는 식감이 좋은 상추, 적양파까지. 아 침고여.


언어에 대한 변
‘말이란 전달사랑, 장기자랑, 혹은 전투와도 같은 것이었다. 잘한 말이란 잘 휘두른 일격의 칼부림 같은 것이었다. 거침없는 기개와 솔직함 그리고 말재간 덕붙에 나는 어딜 가도 말하는 것 하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말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갔다. 내가 하는 말이 오늘 나의 기분이었으므로, 나 또한 내 말을 들으며 마음을 더듬어보아야 했다.
말과 말 사이의 간격, 그 사이의 묵음, 침묵의 의미들. 뱉어진 말과 그 말을 대체할 수 있었던 말, 그 말의 진정한 속뜻. 말과 말 사이의 순서, 뉘앙스, 맥락 그리고 역학관계. 한 조각 혹은 맺음, 또는 모든 것을 전복하는 말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230p-

말. 참 어렵지. 말을 잘 하는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나는 생각을 정리해야 내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이야기를 해야하거나 갑자기 선택을 해야하는 일이 생기면 후회를 많이했다.
말을 재미있게 잘해서 유쾌한 사람. 말을 센스있게해서 큰 일을 간단하게 만들거나 사랑받는 사람. 말을 예쁘게해서 감동을 주는 사람. 잘 휘두른 일격의 칼부림! 스몰토크가 어려운 나는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언변이 좋은걸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 말고, 자신의 올곧은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할 줄 아는것이 멋있다.
성격적으로 조심성 많고 낯가리는 부분이 말하기에도 작용해서 말끝이 흐려지고, 그게 자신감 없어보이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날때마다 문장을 또박또박 정확하게 마무리하려는 노력을 조금씩 해본다.
말과 말 사이의 간격, 묵음, 침묵의 의미들, 말과 말 사이의 순서, 뉘앙스, 맥락... 이 나열들이 고맙다. 덕분에 천천히 생각해보게되네.
말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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